Thursday, May 15, 2014

아데네에서


아테네에서



이름 이야기, Paul Kim?

드디어 아테네이다. 어제 저녁 15시간의 비행끝에 암스텔담을 거쳐 드디어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이 우리 이름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사에서 고용한 택시 운전사였는데 오랜 친구처럼 반갑다. 우리 이름을 알아준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가?

이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기 소개를 하게 되었다. 우리 내외만 한국 사람이고, 모두 다른 나라 사람이다. 물론 미국인이 대다수였고, 호주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싱가폴에서도 사람이 모였다. 나는 미국에 이주한 후, 줄곧 한국 이름을 사용했고, 내 이름을 기억하거나 발음하는 것이 힘든 미국 친구들에게는, 너희가 내 친구가 되려면 적어도 내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정도는 해야하지 않는가, 고집을 부리고 미국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이제 함께 있을 시간이 18일 밖에는 안되는데, 르는 것은 고사하고 발음하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조금 양보하기로 하고, 부르기 쉬운 미국 이름을 이 여행중에만이라도 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이름이 Paul. 이 번 여행은 바울의 자취를 더듬는 여행이기 때문에, 바울처럼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나도 따르리라는 의미도 있었다. 아내는 결혼 40주년 기념여행에 하필 독신자였던 (이것도 확실하진 않지만) 바울의 이름을 택하느냐고 가볍게 항의하기도 했었지만, 나는 어쨌던 이 번 여행중에만에라도 바울이 되기로 하였다.                                

이 번 여행의 인솔자는 미네소타의 베델신학교의 성서학 교수와 이스라엘의 성서학연구소의 교수를 역임한 Carl Rasmussen박사와 그의 아내 Mary이다. 모인 사람의 직업과 인종도 다양하다. 물론 백인이 절대 다수이지만, 인도인, 중국인, 흑인도 끼었고, 물론 한국인 대표로 우리가 끼었다. 직업은 낙농업자, 재정 상담자, 의사, 예비역 공군 조종사, 교수, 선생.... 그리고 물론 목사들이 다섯 명, 실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오스트렐리아에서 온 신부도 한 사람 있었고, 미네소타에서 캐톨릭 잡지사의 편집장을 하는 친구도 있었으며, 몰몬교 신자라고 생각되는 부부도(스스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있었다. 각자 소개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 꽤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였군... 내 인생의 경험의 지평이 넓어지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오늘 아침, 드디어 첫 순례길의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아데네에서 묵는 호텔 (Divani Palace Acropolis)이 아크로 폴리스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서 오늘 둘러 볼 아크로폴리스에 갔다. 6년 전 우리는 이 곳을 방문했었지만, 그 때는 안내도 없이 그냥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자가안내를 했었다. 지난 번 방문때와 다른 점은 우선 방문객의 숫자이다. 오가는 통로가 막혀 사람이 지나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었다. 같은 색갈의 모자를 쓴 학생그룹도 두어그룹 만나고, 가슴에 스티커를 붙인 단체 여행객, 특히 크루즈 여행객들은 수도 없이 만났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아마도 이 곳은 세상에서 방문객이 제일 많은 유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네스코의 인류문화유산 제 1호의 이름대로, 사진도 제일 많이 찍히는 곳일게다. 우리는 안내하는 불라(Voula)여사가 한적한 곳을 찾느라고 애를 썼다. 그러고도, 소리를 지르며 설명을 해야했다.

바울이 아데네에 처음 왔을 때, 철학자들과 변론했던 장소인 아레오바고의 위치가 오늘 이 아크로폴리스 서쪽 바위위의 편편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ars Hill이라고 알려진 바위 언덕을 올라가 보니 정말 아레오바고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핍박을 피해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이 곳 아데네로 급히 내려왔었는데, 바울을 염려한 형제들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통해 아데네 항에 도착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어있다.


도착하는대로 그를 안내했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고, 바울 혼자만 아데네에 들어온 것이다. 아레오바고에서 보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항구에서부터 도시로 들어오는 도로가 보인다. 바울이 걸어들어오면서 우선 눈에 띄인 것이 거리 곳곳에 선 우상들이었을 것이다. 희랍의 신화를 보면 얼마나 많은 신의 이름이 등장하는지! 산의 신, 바다의 신, 불의 신, 음악의 신, 전쟁의 신으로 가득한 도시가 당시의 아데네였다. 희랍의 신만이 아니다. 당시는 로마의 전성시대로써, 로마제국은 자신들의 치하에 있는 도시들에 자신들의 신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온갖 신들과 황제의 신상까지 세운 것이 아닌가? 이 모든 우상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바울은 분개하였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아데네는 당시의 지식인들이었던 철학자들과 변론가들의 집합지였다고 하는데, 이들이 날마다 공론을 일삼하 소일하는 모습도 바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레오바고 바위 위에서 우리는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를 읽게 되었다. 참으로 실감나는 경험이었다. 안내자의 설명으로는 그 설교를 아무리 천천히 읽어도 2분 남짓 걸리는데, 아마도 바울이 이야기하도록 허용된 시간은 6분이었을 것이란다. 당시의 변론 규칙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부활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소란스러워졌고, 방해가 심해서 더 계속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의 설교가 2분 밖에 안 되었을까, 믿을 수 없었지만, 오후에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가서 보니, 정말 변론시간을 재는데 사용했다는 물시계가 있었다.

바울의 열정과 그가 무릅썼던 위험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느낀 시간이었다.


그 외에 또 한 가지 경험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2 마일 정도를 걸었는데, 발과 다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정혜는 운동화가 너무 작았는지, 발이 끼어 아프고, 나는 다리도 발도 아파서 나중에는 패잔병이 절룩거리듯 걸어야했다. 잠간 걷고도 이렇게 엄살을 떨 수 밖에 없다면, 그 넓은 세계를 도보로 주로 여행했던 바울의 고통은 어땠을까? 그래도 이런 육신의 고통에 대해 불평한 흔적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전적인 헌신 (Total Dedication)의 위력인가? 아무튼 그의 열정과 체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이 여기시고 돌아보소서!

아이고, 발도 아프지만, 계속 콧물이 흐르고 몸살기운이 있으니, 또 내일을 어떻게 견디려나  걱정을 하다가도,  바울도 견뎠는데, 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고 살아온 내가 이렇게 걱정을 하다니, 하며 마음을 추스린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안내자는 이 곳 저 곳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많이 하지만, 바울의 신을 신고  그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며 느끼며 다니는 것으로 목표를 삼은 내게는 하루 종일 바울 생각뿐이다. 어쨌건 안내자의 설명 속에서 그리스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전해진다.   특히 민주정치의 효시를 이룬 아데네의 의회정치에 대해 설명할 때, 그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배어났다.
 
(오늘은 이만 합니다. 사실은 서툰 이 블로그를 만드느라, 잠시간은 2시간 줄었습니다. 사진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판데온 신전을 배경으로 찍은 것입니다.)





2 Comments:

At May 17, 2014 at 2:50 PM , Blogger Unknown said...

This comment has been removed by the author.

 
At May 17, 2014 at 2:53 PM , Blogger Unknown said...

사진도 잘 나왔고 보기에도 참 좋습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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