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19, 2014

델피(Delphi)와 메테오라(Meteora)

델피(Delphi)


6년 전 그리스를 여행했을 때, 우리는 델피(Delphi)에 들리지 못했었다. 터키와 그리스를 방문하는 이 번 여행에 델피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산길을 꼬불꼬불 한참을 올라가야하는 외진 곳에 위치한 때문에, 여간한 결심이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이다. 지난 번 여행때는 캠핑카를  몰고 다닌 덕분에 가파른 언덕길이 부담이 되었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들르지 못했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온 신비한 곳이어서 아쉬움이 컸었다.

델피에 들어서면서 한 가지 가지게 된 의문은 왜 하필 이런 곳에 그리스 전체에 영향을 끼친 신전이 자리를 잡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데네나 고린도와 같은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고, 그 보다도 가파른 산 언덕에 신전과 도시가 자리를 잡은 것이어서,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짓기에는 아주 어려운 곳이었다. 지금도 델피는 모든 거리에서 일방통행이다. 거리가 좁아서 양방통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하필 이런 곳이? 해답은 이 곳에는 처음부터 도시가 형성된 것이 아니고, 신전만  존재했다고 한다. 아폴로를 섬기는 신전과 그 사제들의 거처만 있었던 것이 후에 도시가 형성된 것이다. 아폴로 신은 올림푸스 산에 거하던 제우스의 아들로써, 원래 이곳을 지배하던 지하의 신 가에아(Gaea)와  이 지역을 지키던 용 파이톤 (Python)과 싸워 이기고 이 곳을 지배하는 신이 되었다. 그 후로 이 곳에 아폴로를 섬기는 신전이 세워진 것이다.

아폴로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신이었는데, 제우스의 법을 지키도록 감시 감독하는 법의 신이면서, 또한 음악의 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은 최고의 신 제우스의 대변인으로써, 그의 뜻을 받아 말하는 일이다. 이런 역할 때문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신전을 찾았고, 델피의 신탁 (Oracle)이 그리스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막중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하고 신비한 델피의 신탁도, 안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허구였는가, 웃음이 나온다. 신탁을 받는 역할은 여사제가 했는데, 신전 한 구석에 바위가 갈라진 틈새가 있었고, 그 틈을 통해 유황성분이 섞인 지열(fume)나왔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와서 신탁을 부탁하면, 여사제가 바위틈에 앉아 지열을 쐬면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게 된다. 지열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여사제가 좀 심하게 말하면 횡설수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언어를 해석하는 사제 (언제나 남성인)가 통역을 하게 되는데, 그 역할의 분담이 철저해서 신탁은 여사제가, 통역은 남자 사제가 하게 된 것이다. 이 사제들은 교육도 많이 받고, 지혜도 많은 사람들이어서, 언제나 빠져 나갈 구멍을 계산하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매년 2월에 한 번 아폴로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았으나, 후에 그 횟수가 늘어서 겨울을 제외한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의 여러 도시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을 놓고 신의 뜻을 묻는 일로도 신탁을 사용했지만, 아기를 낳는 일이라던지, 농사를 짓는 일과 같은 사사로운 일들까지 신탁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신탁을 받는 일에 우선권을 얻기 위해서 각 도시들은 신전에 자기들의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우기도하고, 물질공세를 펴기도 했을 정도로, 신탁은 중요하게 여겨졌다.

델피의 유적은 아폴로 신전이 얼마나 그리스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신전을 중심으로 노천 극장, 운동장을 비롯한 운동시설, 각 도시에서 기증한 기념비들, 물건을 거래한 상인들의 상점과 창고들이 가파른 언덕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이 곳에서 출토된 물품들을 중심으로 박물관이 서 있었는데, 전시된 물품들의 예술성이나 규모가 참으로 놀라웠다.

이 곳에는 당시의 내노라하는 철인들과 학자들도 많이 모여왔다고 하는데, 그 중에 플루타크 영웅전으로 잘 알려진 플루타크가 30년을 이 곳에서 지내며 많은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이 없는 허구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신탁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다.

델피에서도 그랬지만 그리스를 여행하는 중에 신화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신과 신들의 전쟁이야기, 사랑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왜 희랍사람들은 이와 같은 전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는가, 의문이 생긴다. 안내자는 모든 신화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화에 나오는 존재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신화는 결국 실제로 있었던 영웅들이나, 전쟁과 같은 사건들을 미화하거나 과장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겠다. 신화는 올림푸스 산 정상이나, 하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 곳 지상에서 민족의 조상들이 살아냈던 삶의 이야기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화의 중요성을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메테오라 (Meteora)


델피를 떠나 우리는 칼람바카(Kalambaka)에서 1박을 하고 메테오라로 갔다.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으나, 막상 이 곳 그리스에 와보니 유명한 곳이다. 메테올(Meteor)이라는 말의 뜻은 "공중에 매달린(hanging in the air)"이란다. 중부 그리스의 데살리 평야에, 기괴한 암석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데, 이런 바위의 모습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바위 꼭대기에 수도원들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원래 24개의 수도원이 있었는데, 지금 남은 것은 6곳이다. 정말로 하품이 나오는 풍경이었다.

그 유래는 11세기경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세속을 떠나, 홀로 지내며 신과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몇 사람의 수도자(hermit)들이 이 바위들 중간에 바위를 파서 굴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과 발을 사용하여 바위에 올라갔으나 후에 나무사다리를, 더 후에는 밧줄사다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후에 수도자들이 늘어나면서, 수도회가 생기게 되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건물을 지을 필요가 생겼는데, 속세와 떨어져 살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바위 위가 되었다. 도대체 도구나, 기계나 건축공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 바위위에 집을 지을 생각이 났을까, 상상이 되지않는다. 하기는 한국에도 암자들이 사람들이 오가기 어려운 곳에 지어졌고, 티베트 불교의 사원들도 상상하기 힘든 위치와 규모로 지어지긴 했으나, 여기에 지어진 수도원들에 비할 수 없다. 지금은 과학의 도움을 받아 물건을 운반하는 것도 등에 지고 암반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도르래 시설을 사용하여 건축자재나, 식품, 또는 사람들 운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도르래 시설을 위해 처음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일일히 등짐을 지고 바위를 올랐다고 하니 그 끈기와 체력, 그 열정에 감복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지금은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편리하게 되었고, 관광객들로부터, 또 일반 신도들로부터 얻는 수입으로 수도사들의 삶이 그 전같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와 같이 수도생활이 쉬워지면서, 수도사들의 숫자도 줄어들어서, 지금 남아 있는 6곳의 수도원 중에는 수도사 한 명만이 남아 지키는 곳도 있다고 한다.

물질의 풍요와 육신의 안락이 수도생활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이 것이 어찌 수도원에만 통하는 사실이겠는가? 참으로 풍요한 사회에서 온갖 쾌락의 유혹에 노출되어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사실이 아닌가?

사도 바울의 순례길을 따라 여행중인 우리는 좋은 호텔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안락한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겪은 어려움을 하나도 겪지 않으면서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그 미안한 마음을 아시고, 고통스런 밤을 주신다. 어제 밤, 끊이지 않는 기침으로 거의 잠을 잘 수 없게 된 것이다.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이 대로 그냥 집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닌 가, 생각할 정도였다. 나만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아내도 잠을 자지 못하고 걱정하느라고 고생을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동행중인 인도인 의사 Vevik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청진기를 들고 와서 진찰을 해준다. 그리고는 천식이나 기관지, 폐렴의 증세가 없고 폐가 깨끗하니, 알러지 증세가 심할뿐이라고 걱정하지 말고 알러지 약을 챙겨먹으라고 권한다. 그 이야기에 용기를 얻어 하루를 잘 지내며 지금까지 왔다.

밤이 늦었다. 여기서 오늘의 이야기는 끝내어야겠다.  새벽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곳은 그리스 북단, 터키와의 국경이 가까운 알렠산드리오폴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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