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향하여.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 유럽에 들어가면서 첫 발을 디딘 곳이 네압볼리(Neapolis)인데 이 곳이 오늘의 카발라이다. 네압볼리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되면서 크리스토폴리스가 되었다가 이슬람 오토만 제국의 치하에서 카발라가 되었다고 한다. 카발라는 역(Station)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옛날,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을 오가는 군인들이나 여행객들이 쉬어가는 곳이었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6년 전 이 곳에서 하룻밤 지낸 추억이 있다. 그 때, 잔잔하고 푸른 에게해에 발을 담그며 바울의 유럽 상륙때의 심정을 느껴 보려고 했었다. 오늘은 터키로 향하여 가면서, 시내를 돌며, 항구에 잠시 들렀다. 어떤 항구든지 나그네에게는 낭만의 장소이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제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위한 장소이지만, 나그네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도착했던 항구는 '옛 항구'라는 이름으로 조그마한 어항이 되어 있었고 여객선과 큰 화물선을 위한 큰 항구는 물론 '새 항구'라는 이름으로 따로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꿈에 본 환상만 믿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 바울의 용기는 새로운 세계를 점령했던 왕들이나, 망망대해를 탐험한 컬럼버스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군왕들은 군사력을 의지했고, 항해사들은 경험과 기술, 그리고 전수받은 지식을 의지했지만, 바울이 의지한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뿐이 아닌가? 그래서 바울은 우리 모두의 선생이 된다.
뻐스는 계속해서 달려 그리스와 터키 국경에 가까운 알렉산드로폴리스(Alexandroupolis)라는 도시에 멈춘다. 이 곳에서 하룻 밤을 지내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점령하면서, 많은 도시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안내자의 이야기로는 전부 18곳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글쎄... 그렇게나 많이?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아무튼 우리가 묵게 되는 이 도시는 알렉산더의 후광이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알렉산더의 도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써, 로마 시대의 철학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크기로도 로마에 이어 두 번째였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략은 그의 정책에서 나타난다. 그는 군사적인 점령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점령지역마다, 그리스의 문화를 온 세계에 퍼뜨리기 위해, 철학,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들만 아니라, 연극, 음악등을 전수할 문화인, 그리고 농사법이나 온갖 기구를 제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농부나 대장쟁이까지 다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희랍의 지배가 끝나고,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어도, 문화와 정신적인 세계는 여전히 희랍의 세계였다는 것이다. 참.... 아리스토틀이 그의 가정교사였다고 하니, 그런 가정교사를 붙여준, 부모를 칭찬해야하나?
이틑날 아침 일찍, 터키를 향해 떠났다. 그리스와 터키는 과거 여러 가지 문제로 다툰 적도 있고, 더구나 400년 넘는 세월을 터키의 오토만 제국의 그리스 지배가 있었으며, 지금도 그리스에 속한 섬들이 터키 코앞에 있어서 터키의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터키는 서방 유럽과 군사동맹을 맺은 NATO회원국이지만, 아직 EU회원국은 아니다. 그리스가 비토권을 행사하며, 터키가 EU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터키의 노력이 번번히 좌절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의례적인 수속만이 필요했다. 다만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했던 것과, 터키 국경을 지나면서 새 안내자와 순례객이 두 사람 합류한 것이 새로운 일이 되었다. 국경에서 우리와 합류한 새 식구는 캐나다에서 온 부부로써, 이스라엘에서의 두 주간의 순례를 마치고, 내친김에 바울의 발자취를 따르는 선교여행에까지 따라 나선 것이다. 안내자는 터키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있는 툴루(Tulu)여사이다.

터키는 희랍시대부터 아나톨리아(Anatolya)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해뜨는 동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지금도 터키를 가르키는 말로 아나톨리아는 많이 쓰여지고 있다. 인구는 8천만에 가깝고, 영토는 미국의 텍사스정도로 넓다. 한국에 비해서는 매우 넉넉한 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경을 지나니, 그리스에 비해 거의 빈 땅이 보이지 않는다. 농사가 활발한 지역이라는 첫 인상을 가지게 된다. 한 시간 남짓 달려서 엣세아바트(Eceabat)라는 항구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카나칼레(Canakkale)라는 건너 편 항구에 30분 정도 훼리 보트를 타고 달다니엘스해협을 건너 유럽에서 아시아에 드디어 상륙한 것이다. 이제 터키에서의 본격적 여정이 시작된 셈이다.
트로이(Troia)

아시아 쪽 터키에 도착해서 처음 들른 곳은 호머의 일리아드로 유명해진 트로이(Troy)였다. 성서와 관련된 지역은 아니지만, 하도 유명한 곳이어서 빼어놓을 수 없는 곳이다. 트로이의 유적은 모두 8층으로 나뉘는데, 오랜 세월에 결쳐서 한 시기의 무너진 건축물의 토대 위에 또 다른 문명의 건축이 이루어져서 8개의 다른 층이 발겨된 것이다. 트로이가 번영한 사연이 흥미로웠다. 이 곳은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었으나, 북서편으로 항해하기에는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날들이 많이 바다가 너무 거칠어 항해가 위험해진다고한다. 이 지역의 바람이 얼마나 센가는 도시의 별명이 "바람 센 트로이" (Windy Troy)였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우리들이 유적을 돌아보는 중에도 정말 바람이 강했다. 바람과 파도가 너무 거셀 때, 배들은 트로이 항구에서 바다가 잔잔해기를 기다려야했단다. 그들이 정박해 기다리는 동안에 트로이에서 필요한 식품이나 물품들을 구입해야했고, 배를 타고 건너려는 승객들은 도시에서 거처를 구해야했던 것이 도시 번영의 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참... 이렇게 부자가 되는 길도 있었다니...
유적지 한 복판에 트로이 전쟁에 쓰였다는 목마의 모조품이 서있었다. 건물 3층 높이의 나무로 만든 조각품이다. 실제로 이런 목마가 어떻게 전쟁터에서 운반되었는가, 상상이 안되지만, 구경거리로써는 충분히 흥미를 주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풍경은 동네를 지날 때 마다 보이는 모스크이다. 유럽을 다녀보면 동네마다 교회의 모습이 보이는 것과 같이 이 곳의 동네마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다 모스크가 있다. 터키는 회교가 국교가 되어 인구의 95%이상이 모슬렘이고, 타종교의 존재를 허용은 하면서도 전도활동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슬렘 중에서도 절반은 개방적이고 절반은 보수적이어서, 상호 견제가 심해 다른 모슬렘 국가와 같은 종교 박해는 없는 것 같다. 정치도 세속정치로 제도가 되어 있으나, 보수적인 사람들에 의해 모슬렘 정치제도로 바꾸려는 운동이 거세다고 한다. 모스크에서 하루 다섯번씩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나오지만, 실제로 그 소리를 듣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안내자의 말을 들어보니, 성일인 금요일에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아도, 평일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터키에서의 첫날이 끝났다. 카나칼레(Canakkale)라는 항구도시에서 터키의 첫 밤을 보낸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