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5, 2014

드로아와 앗소를 가다

드로아와 앗소를 가다

 

드로아(Troas)


카나칼레에서 아침 일찍 버스는 우리를 싣고 알렉산드리아 드로아(이 도시도 역시 알렉산더의 이름을 딴 도시중 하나이다)를 향해 떠났다. 마음이 설렌다. 사도 바울에 행적에 관해서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의 도시 중에 드로아는 그 중요성에 있어서 에베소에 버금가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드로아는 한 때, 융성한 도시였다고 한다. 로마의 황제들이 소아시아와 유럽대륙을 바다를 건너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 이 곳을 제국의 수도로 삼으려고 생각했던 것을 보아 위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로부터 이 곳에 수도를 옮길 계획을 구체적으로 가졌으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발견한 후, 그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수도로 택함을 받지 못한 이 후 급격히 도시는 쇠락했고, 게다가 내항, 외항의 두 항구가 모두 토사에 묻혀 항구로써의 생명도 끝이 났다. 터키 서해안, 에게해를 향해 흐르는 큰 강이 모두 다섯이라는데, 강이 바다와 만나
는 곳에 위치해 번영했던 항구들이 지금은 육지가 되어 있는 기막힌 사정이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강하류에 토사가 쌓이는 현상(slit)으로, 해안이 조금씩 바다쪽으로 밀려 나간 결과이다. 드로아가 바로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달리안(Dalyan)이라는 조그만 마을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항구였던 곳에 가보니, 옛날 내항은 연못이 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 염소와 양들이 유유히 풀을 뜯는 초원이 되어 있었다. 항구의 유적은 돌들로 남아  풀밭에서 또는 물가에서 딩굴고 있었다.  강을 준설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라 할까?


드로아의 역사적, 혹은 지리적 중요성보다도 우리 바울의 행적을 좇는 순례객들에게는 이 도시가 바울과 어떻게 관련되는가가 더 중요한 관심사이다. 신약성경에는 모두 네 번 드로아와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1)사도행전16: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머무는 중에 밤에 환상 속에서  마게도니아 사람이 손을 흔들며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는 청원을 듣게 된다. 원래 그는 흑해(Black Sea)연안의 비두니아 지역을 가려고 계획했는데, 어쩐 일인지 성령이 그 일을 허락하지 않아 답답해 있던 차였다. 이 환상 후에 물론 바울은 그의 일행과  유럽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던 네압볼리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원래 바울과 동행했던 실라와 디모데 외에 누가가 동참하여 여기서부터 소위 사도행전의 "we"부분이 시작된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이 부분에서 바울 일행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이란 1인칭 복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2)사도행전 20: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는 길에 드로아에 7일간 묵은 이야기가 나온다. 바울의 체류 중 있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는 그의 강론이 너무 길어지면서, 청년 유드고(이름의 뜻이 "행운아"이다)가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이야기다. 당시 3층 집은 개인의 주택이기보다는 일종의 아파트로써 insula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주거형태였다고 한다. 바울은 내일이면 이제 이 사람들과 헤어져야한다는 급한 마음으로 밤새 강론했겠지만, 노동으로 피곤하고, 촛불로 더워진 방에서 나른한 몸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젊은 이의 사정이 애닲게 다가온다. 물론 이 젊은 이는 바울의 간절한 기도와 보살핌으로 그 생명을 다시 찾게 된다.

3)고린도후서 2:12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간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린도에 보낸 이 편지의 내용으로는  이미 드로아에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3차 전도여행 중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4)디모데 후서 4:13 바울이 생애의 거의 마지막이 되어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말 중,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오라는 내용이 있다. 바울이 말년에 드로아에 얼마 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말이다.

드로아에서 바울의 발자취를 찾으면서 한 가지 아리하게 다가오는 그의 심정이 느껴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게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어떤 말을 하였을까? 바울의 마음은 대단히 번민으로 가득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해가 뻔히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면서, 그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보다는, 그 귀한 마지막 시간을,  온 힘을 당해 드로아 교회의 교인들을 권고하고, 복음에 굳게 설 것을 부탁하는 일에 사용하였다. 정말로 자기 사명에 철저히 촛점을 맞춘 삶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가?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을 그를 생각하며 나도 바닷가 돌기둥위에 앉아본다. 수년 전 드로아에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마게도니아로 떠난 그가, 이제는 같은 자리에서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모르는 채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려는 간절한 열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로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와 같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 겟세마네에서 그 고난의 잔을 앞에두고 번민하며 기도했던 것과 같이, 드로아에서 바울은 이제 고난의 장소를 향해 가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기도하며 다지는 것이다.

그가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였을까 하는 것을 도보로 다음 행선지인 앗소까지 가겠다고 고집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바울은 칠 팔명되는 그의 일행을 먼저 앗소로 배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왜 자기는 혼자 걸어간 것일까? 드로아에 옛 도로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 곳을 우리는 잠시 걸었다. 고난을 향해 가라는 주의 뜻을 씹고 삭이고, 씹고 삭이는 과정이 그 길 위에 있었다. 바울이 우리의 선생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거쳐, 순종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가 많은 경우에라도, 결국은 순종으로 나아간 것이다.

드로아 항구 자리를 돌아본 후에 안내자는 우리를 고대의 채석장이 있었던 유적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스와 터키의 유적들은 대부분 신전이나, 시장, 운동장, 극장과 강당들인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석조라는 것이다. 고대 건축에 채석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 채석장에도 가보니, 미처 사용하지 못한 돌기둥들이 산 중턱에 딩굴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큰 돌을 산에서 떴으며,  돌기둥을 만들었을 것인가?  또 그 만든 돌기둥들을 어떻게 건축현장에까지 운반했을까? 건축현장에서는 이 돌들을 다시 다듬고 세우고 쌓는 일을 누가 한 것인가?  나는 또 부아가 난다. 건축을 설계한 사람, 돈을 댄 사람, 섬기는 신의 이름, 당시의 지배자의 이름들은 남아 있는데, 실제로 노동한 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갔다. 석공들이여, 노예들이여, 건축노동자들이여, 이 일을 가능하게 한 엔지니어, 그대들이야말로 위대하다고 외치고 싶다.

앗소(ASso)


드로아에서 20마일 남쪽에 앗소가 위치해 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이 곳까지 도보로 걸어온 후에 배를 타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합류했던 바로 그 곳이다.

희랍시대의 도시들은 대부분 수호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녀본 바로는 제일 인기 있었던 신들은 아티나(Athena), 아폴로(Apollo), 아르데미스(Artemis)등이다. 앗소에는 아티나 신전의 유적이 남아 있었다. 산위에 도시가 있었고, 그 꼭대기에 신전이 있어서, 오르막 길을 꽤 길게 올라야했다. 그러나 이제 여행이 10일째를 넘어 가면서, 신전 구경도 좀 시들해진다. 건축기술이나, 규모에 놀라는 것도 처음 몇 일, 신기한 것도 자주 보면 무감각해지는가?

그 동안 배운 것 한 가지는, 기둥의 모양으로 건축시대를 분별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희랍시대의 기둥 위에 얹혀지는 크라운의 모양에 대해 배웠는데, 그 것이 디자인의 차이일 뿐 아니라, 문명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전 6세기 까지는 도리아식 기둥으로 크라운의 모양이 지극히 단순하고, 중후한 모양을 나타낸다. 헬레니즘의 전성기인 주전 5세기 이후에는 크라운의 양쪽이 말려올라간 모양의 이오니안 기둥이 유행하였다. 기둥에는 홈이 파져서 훨씬 화려한 모양을 가진다. 로마 시대인 주전 2세기 부터 몇 백년 동안에는 가장 화려한 문양을 가진 고린도식 기둥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고린도식 크라운에는 식물의 잎이나 꽃 문양이 사용되었고 세 기둥 중에서 가장 화려한 모양을 가진다. 다 이 것이 안내자로부터 귀동냥으로 배워 안 것이다. 질문을 많이 하는 나를 Tulu 여사는 귀찮아하지 않아 고마움을 느낀다.

앗소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산과 바다가 만나는 좁은 지역에 호텔들이 들어서 있었다. 돌로 지은 호텔에 고풍이 풍기고, 이제까지 묵었던 화려한 현대식 호텔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가 있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다리와 발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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