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모섬, 멜리데
밧모(Patmos)섬, 밀레도(Miletus)
밧모섬
과거에 터키를 여행한 사람들로부터, 밧모섬에 가려고 했다가 바다가 너무 험해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혹시 그렇게 실망스런 일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마음조리며 기다렸었다. 그러나 일어나보니, 날씨는 화창하고 바다는 잠잠하였다. 새벽 다섯시 부터 서두르며 준비해서 쿠사다시(Kusadasi)항에 도착하니, 밧모섬에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 36명을 위해 특별히 전세낸 배다. 밧모섬은 터키에 가깝지만, 그리스 영토이다. 그래서 배에는 뒷편에는 터키국기를 앞편에는 그리스 국기를 달고 있었다. 출경의 수속을 끝내고 나니 6:30분, 배는 고동을 울리며 에게(Aegae)해의물살을 가르며 동쪽을 향해 나아간다. 옛날 사도 요한은 죄수의 신분으로 처량하게 떠난 길을 우리는 소풍가는 학생들처럼, 흥분에 들떠 가고 있는 것이 죄송하기는 했다. 그러나 즐거운 것을 어쩌랴? 배안에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4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우리는 밧모섬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찾은 곳이 요한이 환상 속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동굴이었다. 정말 이 동굴이 그 동굴인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러 동굴 중에 가장 그럴듯한 동굴을 골라서 성지로 삼았을 것이어서, 동굴의 깊이나 크기가 꽤 그럴듯 했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요한 당시의 이 섬은 별도로 감옥이 있은 것이 아니고, 비교적 많은 자유가 유배자들에게 주어져서, 요한도 굴에서 거주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항구가 있는 스칼라(Skala)라는 곳에 집이 있었고, 동굴에는 기도와 명상을 위해 찾았다고 한다.
동굴에서 요한은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 추측해본다. 비록 유배자의 신세이긴 해도, 요한은 박해의 피비린내나는 현장에서는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런 자신의 형편을 다행으로 여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비교적 기독교인에 대해 관대하던 로마의 정책이 바뀌어 무자비한 박해가 시작됬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갇히우고 죽어갔다. 이런 상황이 요한의 마음에 타는 안타까움을 자아냈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의 내용이야말로, 이와 같은 요한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계시록을 읽어보면, 박해중에 있는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는 가, 실감이 된다. 지금은 비록 어려운 환난 중에 있지만, 믿음을 잃지 않고 조금만 참고 견뎌라... 그리하면 영원히 썩지 않는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지금 있는 환난은 잠시 동안이며, 그리스도의 승리의 순간이 곧 올 것이다. 로마를 앞세운 사탄의 세력은 결국 멸망할 것이며, 눈물도, 슬픔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평화가 그리스도에 의해 곧 오게 된다!
이런 내용이 계시록의 메시지가 아닌가? 요한이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품에 안고 눈물로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는 또한 요한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을 것인지.... 동굴에서 잠시 요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깨닫게 된 것이다. 요한은 18개월을 이 섬에 머물다가 에베소로 돌아갔다고 한다.
원래는 아티나의 신전이 있었던 곳인데, 헐고 그 위에 수도원을 지었다고 한다. 크리스토푸스(Christopus)라는 수도승이 이 곳에 수도원을 지을 생각을 가졌으나, 전혀 재원이 마련되지 않아 고심을 하다가 당시의 콘스탄티노플의 로마 황제인 알렉시우스1세를 찾아갔다고 한다. 성채 모습의 수도원은 이 섬의 가장 큰 건물이며, 섬 전체를 압도하는 위용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해적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높은 담을 수도원 주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도원은 제 기능을 하고 있어서 수도사들을 만나 불 수는 있었으나, 말을 걸거나 접촉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섬을 떠나 돌아오는 길은 좀 험했다. 파도가 세어지고, 바람도 많이 분다. 드디어 희생자가 발생했다. 일행 중에 유일한 약사인 Sarah가 멀미가 너무 심해 고생을 많이 했다. 그가 배가 떠나기 전, 우리 내외에게 멀미약을 주어서 우리는 무사했는데, 자신은 멀미약을 너무 많이 먹었는지, 오히려 고생을 한다.
밀레도
쿠사다시(Kusadasi)에 사흘을 머물었는데, 이틀째 밧모섬을 방문했고, 사흘 째는 프리에네(Priene)와 디두마 (Didyma), 그리고 밀레도 (Miletus)를 방문하였다. 프리에네는 고대에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나 성서와는 관계가 없는 곳이어서 여기서는 그냥 지나가기로 한다. 디두마는 밀레도에서 아주 가까이 위치한 곳인데, 이 곳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이 곳도 성서와는 관계가 없는 곳이다.
밀레도는 한 때 융성한 도시로써, 기원 전 6세기까지, 아나톨리아 반도(지금의 터키)의 지중해 관문의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에베소에 항구의 역할을 빼앗기게 되어 쇠퇴하였다가, 로마제국의 치하에서는 이 지역을 통괄하는 총독부가 위치하게 되어 다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항구로써의 기능을 잃게 된 것은 역시 강의 퇴적때문이었다. 원래는 4항구를 갖추고 지중해의 관문 역할을 하였으나, 강하류에 토사가 퇴적하면서, 항구였던 곳은 늪지대가 되었다. 지금 해안선은 원래 항구였던 곳으로부터 5마일이나 바다쪽으로 물러가 있다. 이 곳은 또한 유명한 과학자들, 철학자들, 건축가들이 모여 있던 이유로도 중요한 도시였다. 과학에 얽힌 재미 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탈레스(Thales)라는 과학자의 이야기였는데, 이 사람이 우연히 하루 중 태양이 일정한 곳에 이르게 되면, 그림자의 길이와 사람의 높이가 같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발견을 이용하여 이집트의 피라밑의 높이를 측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이 곳 출신의 건축가 Hippodamus는 기원전 5세기에 이 도시를 재건할 때,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를 설계해서 후에 많은 도시들, 특히 지중해 지역의 도시들이 이 방식으로 도시를 계획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밀레도는 바둑판으로 되어 있어서, 거리들이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관심은 여전히 바울과의 연관에 있다. 밀레도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면서 들린 곳이다. 그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초청해서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눈물의 작별을 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온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목숨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바울의 고백을 밀레도에서 다시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한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목회를 회고하는 대목에서, 겸손과 눈물, 그리고 귀한 것은 무엇이든지 나누려고 했다는 그의 고백에 나의목회자로써의 삶을 비추어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바울과 에베소의 장로들이 다시 못 볼 것을 생각하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일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오래 그 곳에 머무르고 싶어진다. 물론 저녁이 되기 전에 떠나야했지만.
잡소리
우리 일행 36명은 모두 크리스챤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나선 사람들이니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도 다섯 명이고, 나머지 사람들도 한국교회에서라면 모두 장로라고 불리웠을 사람들이다. 평신도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속한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비교적 다 괜찮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사귀면서 교제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을 모두 하는 것 같다.
그렇기는 해도 여행이 길어지고 육체가 피곤해지면서 조금씩 인간의 본성이 보여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나타난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겉으로는 모두를 다 같이 대하고, 가까이 하려고 하지만, 속에서는 불편한 사람도 있고 편한 사람도 있다. 우리 내외는 특히 같은 얼굴 모습을 가진 동양인들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그 것도 영어가 조금은 서툰 사람이 편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싱가폴에서 온 부부와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아가며 너무 가까운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여행의 끝이 가까워 오면서 식탁에도 같이 앉고, 외출도 같이 하는 일이 잦아진다. 참... 인종관계는 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래도 싱가폴 부부가 일행 중에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다.
이 글은 이스탄불에서 쓴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지고 오늘은 블록을 두 개나 채운다. 즐거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