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30, 2014

사데, 서머나(Izmir)

사데와 서머나(이즈밀)

사데(Sardis)


요한의 편지에서 "죽은 교회"라고 모진 책망을 받았던 사데 교회가 위치한 곳의 지금 이름은  사르디스(Sardis)이다. 로마치하에서 갈라디아지방(지금의 터키 중부)과 아시아( 지금의 터키 서부 해안지방)를 연결하는 도시로써 교통의 요지였다. 원래 이 도시는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는데, 주전 6세기에 페르샤의 고레스왕에 의해 점령되었다고 한다. 이 도시를 점령한 왕에 대한 예언이 이사야 41장에 나와있다고 우리를 인솔하는 Rasmussen박사가 설명하며 성경을 읽었는데, 정말 무섭게 닥치는 점령군의 묘사가 너무나 실감나는 경험을 하였다.

사데교회에 준 요한의 경고가운데, '내가 도적같이 이른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것도 사데의 역사에서 가져온 표현이라고 한다. 페르샤군이 사르디스를 침공할 때, 루디아군의 수비가 하도 단단해서 도저히 그 성을 뚫고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대치상태가 수 개월이 지났을때, 성에서 한 병사가 비밀통로를 통해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을 페르샤군이 발견하게 되었고, 드디어 그 통로를 통해 공격함으로써, 함락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기습공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빗대어, 요한은 사데교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갑자기 임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경고 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보니, 성경의 표현들은 당시 교인들의 삶의 현실이나, 또는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연관된 것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지순례의 유익이 바로 이런 배경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역시 사데의 구경거리도 주로 신전의 유적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는 돌무더기들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사실 돌이란 가장 튼튼한 건축자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서 돌로 건축하면서 그 건축물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하는 것이겠지만, 가장 빨리 무너지는 건축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레코 로만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중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특히 터키에서 보는 건축물은 더 그렇다. 왜냐하면, 이 곳에는 지진이 많이 일어나서,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라도, 돌로 지은 것은 지진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물에 하나님을 모셔 놓고, 영원히 계시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돌보다도 약한 건축재라고 할 수 있는 목재가 차라리 더 오래 가지 않을 까 싶은데,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특히 돌을 선호하였다. 돌보다는 목재가, 목재보다는 짚과 같은 부드러운 자재가 지진에는 더 강했을 것이다. 돌 무더기 사이에서 피는 꽃들이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다.



사데의 유적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히 체육관이다. 물론 원래의 건물은 다 무너졌으나, 복원된 건물이 대단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스는 물론이고, 로마도 육체적 힘에 대한 동경이 강해서 체육행사가 많았다고 한다. 격투기를 비롯해서 권투, 달리기, 던지기와 같은 경기가 그리스 시대에 인기가 있었다는데, 로마시대에 와서 검투사, 짐승대 짐승, 인간대 짐승 사이의 싸움이 추가되었다. 잔인한 시대였다. 체육관에는 목욕시설, 화장실 시설까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또 한 가지 구경거리는 왕의 도로 (Royal Road)이다. 페르샤 시대의 유적으로써, 이 곳 사데에서 페르샤의 수도였던 수사에 이르기까지 1,500마일의 거리에 달하는 하이웨이였다. 사람이 걸어서 3개월 걸리는 이 길을 왕의 보발군 (horseman)들은 9일에 주파를 했다고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위나 추위, 밤의 어두움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교대하며 달렸단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다. 당시 페르샤 치하의 넓은 땅에 왕의 보발군들이 유대인을 죽이라는 칙령을 취소하는 또 하나의 칙령을 전하기 위해 밤낮을 달렸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돌기둥도 대단해 보이고, 그 정교한 조각 솜씨와 돌다루는 솜씨에 감탄하다가, 하도 많이 보게 되면, 이 것이나, 저것이나 다 비슷하게 보인다. 더구나 헬레니즘 시대나 로마시대의 도시 구조는 어느 도시건 거의 같다. 가장 높은 곳에 신전이 있고, 그 밑에 시장과 광장, 그 옆에 극장, 그리고 공회당, 때로는 어마어마한 목욕탕이다. 사데의 유적도 다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싫증이 나기 시작한 나는 신전 뒤 쪽 산등성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서 돌아가 본다.  양떼가 풀을 뜯고 있다. 양을 치는 목자가 나를 보더니, 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가가 보니, 새끼양을 가르키며 한 번 안아보라고 손짓을 한다. 안아보니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너무나 좋다. 양을 내려놓는데, 서툰 영어로 목자는 나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더니, 목자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오 꼬레아, 브라더칸츄리!"하는 것이 아닌가? 기회가 있으면, 한국인으로써 터키를 여행하는 것이 어떤 경험인 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금은 성지순례에 맞는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서머나


서머나의 현재 이름은 이즈밀(Izmir)이다.  지금은 터키의 3대도시 중 하나로써, 300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다. 이 곳에는 터키의 해군함대 사령부와 북대서양조약군 (NATO)의 함대 사령부가 있다.

도시가 하도 크게 발전하다 보니, 중요한 유적도 모두 도시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도 요한의 편지에서 서머나교회는  "부요한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무엇보다 유대인들의 유혹과 핍박을 견딘 일에 대해 요한은 칭찬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받을 환난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순교자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 곳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보다도 주후 2세기에 이 곳 교회의 감독을 지낸 폴리캅의 순교이야기가 더 유명하다. 나이가 86세에 이른 나이에 붙잡혀 운동장 한 복판에 세워졌는데, 총독이 그 나이를 고려하여,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용서하리라고 살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든 무신론자들을 저주하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 명령은 들을 수 있었으나, 다시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명령에 폴리캅은 이와 같이 대답했다는 것이다.

"내 평생 86년동안 내가 내 주의 종이 되어 살아는데,  주는 한 번도 내게 잘못한 일이 없소. 어찌 내가 나를 구원한 내 왕을  부인할 수 있겠소?"

그러고는 형틀에 매여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경험은 이 곳의 유대인의 시나고그에 갔을 때, 바닥에 그려져있는 원과 그 속의 직선들의 그림에 얽힌 것이다.  안내자는 이 그림이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의 비밀 암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희랍어로 잌수스라는 글자를 이 그림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잌수스는 물고기를 뜻하는 말이고, 그래서 물고기 형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상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시다."라는 문장의 각 단어 첫 글자를 합하면 물고기라는 단어가 된다. 그런데 이 물고기 상징이 사용된 용도에 얽힌 사연이 눈물 겨운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만나서 물고기 상징의 윗쪽 곡선을 발로 그으면, 상대방이 그리스도인인 경우 그 의미를 알아채고, 아래쪽 곡선을 그어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서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목숨 내어 놓고 믿음을 지켰던 초대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히 미안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 글은 지금 여행이 다 끝나고 마지막 체류지인 이스탄불에서 쓰고 있다. 공식 일정은 끝났지만, 하루를 더 머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0 Comments:

Post a Comment

Subscribe to Post Comments [Atom]

<< Home